숨겨진 태국의 역사 그리고 란나의 탄생
란나의 역사를 이야기 하려면 먼저 태국의 숨겨진 역사 이야기를 먼저 하여야 한다. 현재 태국에서 발행하는 모든 태국의 역사서는 수코타이(고려시 대)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수코타이(고려)-아유타야(조선)-타일랜드(대한민국). 대한민국은 고려이전에 삼국시대도 있었건만...그럼 태국은 그 이전에는 나라(왕국)가 없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이 바로 태국이 숨기고 싶은 과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일본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태국이 싫어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미얀마(버마)이다. 수코타이 이전에 태국 땅에 세워진 최초의 왕국이 바로 버마사람들이 세운 왕국이며 태국은 그 아픈 역사를 숨기고 싶을 뿐이다. 그 아픈 태국의 역사를 이제 풀어 해쳐보려 한다. ...아주 먼 옛날~ 인도 북부를 본거지로 했던 몬족은 새로운 땅을 찾아 민족 대이동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 낸 곳이 미얀마 땅이다. 그들은 그곳에 정착을 하였고 나중에 버마족과의 새 왕국을 놓고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 그 결과 전쟁에서 패한 몬족은 미얀마 땅을 버리고 다시 민족 대이동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려 온 곳 이 바로 지금의 태국 땅이며 태국 서부 안다만해를 타고 계속 남하한 몬족은 더 이상 남하할 곳이 없어서 산맥을 넘는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이 지금의 방콕주변이고 그렇게 세워진 태국 땅 최초의 왕국이 바로 몬족이 세운 드바라바티(Dvaravati)왕국이다. 세월이 지나 이 왕국(드바라바티)에서 공주 한명이 탄생하는데 이공주가 치앙마이(란나)의 역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짜마데비 (Chamadevi)공주이다.
어려서부터 여성스러움은 전혀 없고 사고만치는 어린 공주는 왕실 신하들에게는 눈의 가시 같은 존재 였다. 왕(공주의 아버지)이 신하들과 대전 회의를 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회 의 상을 뒤엎고 불상을 뒤 집는 등... 사고뭉치 공주 를 왕실의 신하들은 예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하들은 왕에게 계속 공주를 내쫒으라는 상소를 하였지만 어떤 아 비가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그것도 공주를 쫒아 낼 수 있었겠 는가? 그러던 중 사고가 발생한다. 공주가 20세가 될 무렵 신하들을 데리고 수개월간의 유랑을 다녀 왔는데 그만 공주의 배가 불러서(임신) 왕궁으로 돌아온 것이다. 태중의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 왕실 신하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고 할 수 없이 왕은 공주를 왕궁 밖으로 내쫒는다. 그래도 한 왕국의 공주인데 홀몸으로 보낼 수 는 없는 일. 많은 신하와 군인 그리고 몸종들이 그 길을 함께 했다. 궁에서 쫒겨난 공주는 방콕주변을 흐르는 짜오프라야강 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새 삶의 터전을 찾아 올라온다. 그렇게 강줄기를 따라 올라 온 곳이 지금의 치앙마이 나잇바자 옆을 흐르는 삥강(Ping River)줄기였다. 그런데 이 공주(짜마데비)에 대한 아주 특이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바로 겨드랑이에서 나는 암내이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공주가 겨드랑이를 한번 풀썩하면 나는 암내로 인하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생명을 잃을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 기록에 남아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과거에는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따로 없어서 동물이나 사물을 이용했다 하는데... 큰 코끼리 한 마리가 평지에서 울면 그 소리가 반경 3마일(mile) 까지 들렸다 하고, 작은 징을 한번 치면 그 소리가 반경 1마일 거리까지 들렸다 한다. 기록에 의하면 공주가 겨드랑이를 한번 풀썩하면 나는 암내가 큰 코끼리 세 마리와 작은 징을 일곱 개 동시에 울린 것만큼의 거리까지 도달하였다고 한다. 코끼리 세 마리면 9마일 그리고 징이 일곱개면 7마일이니 합하면 16마일... 약 25km이다. 대한민국의 작은 지방도시 하나쯤은 냄새로 몰살을 시킬 정도이다. 아무리 역사의 기록이라 하지만 뻥^^이 조금 심하다. 하지만 그 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줄기를 따라 올라 오던 공주가 폭포수 아래에서 목욕을 하는데 폭포수 아래에서 공주가 목욕하고 흘러 내려온 물을 먹은 코끼리 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였으며 주변의 새들은 일부는 죽고 일부는 피해서 날아올라 폭포수 위로 피했다고 한다. 그 폭포가 지금 람푼 지역에 있는 압낭(압: 목욕, 낭: 처녀)폭포로 현재까지 그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런 여정을 통하여 공주가 찾아낸 땅이 바로 치앙마이에서 남쪽 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람푼(Lamphun)이며 그곳에 공주(짜마 데비)가 성을 쌓고 왕국을 건설하니 하리푼차이(Hariphunchai) 왕국이다. (지금 현재도 람푼 시내 중심에 짜마데비 동상이 세워져 람푼을 굽어보고 있으며 당시 성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람푼 시내 입 구로 들어서면 ‘하리푼차이 국립 박물관’과 ‘짜마데비 사원“이 남 아 있다.) 하리푼차이 왕국을 건설한 공주는 아니 왕국의 초대 왕비가 된 짜마데비는 이제 한숨을 돌리며 왕비로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한 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란나 역사의 이 야기가 시작된다. 짜마데비가 람푼에 하리푼차이 왕국을 건설한 그 무렵 치앙마이 도이 수텝(Doi Suthep) 남쪽 도이깜(Doi kam)(현재의 공항 근 처)을 근거로 하는 부족이 있었다. 와(Wa)족 또는 와댕(입가에 피 를 묻히고 있다하여...댕(빨강))족으로 불리는 식인부족이다.(1950 년대 까지 식인 흔적이 남아 있다는 자료가 있음) 와족의 족장 위랑가(Viranga)는 어느 날 부하들로부터 냄새나는 짜마데비 여왕의 이야기를 들었고(냄새가 심하니 식량이 아닌 여인으로 본 것이다.^^)급기야 바로 청혼을 명령하게 된다. 당시 치앙마이에서 와족의 악명은 하늘을 찌를 기세였고 족장의 명령을 거부하면 온 마을이 피로 물들던 상황 이었다. 이런 상황에 청혼을 받게 된 짜마데비 왕비지만 거부할 수 없는 공포와 도 같은 명령 앞에서 그녀의 지혜가 발휘하기 시작한다. “당신의 청혼을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산(임신)중 이니 산달이 끝나고 아이가 이유기가 끝나면 내 당신의 청혼에 응하리라...” 서신을 받은 위랑가 족장은 기뻐했고 그 날이 오기 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8년(실제로 짜마데비 여왕은 쌍둥이를 낳았으 며 첫째는 훗날 어머니의 뒤를 이어 하리푼차이의 두번째 왕이 되고 둘째는 람빵(Lampang)에 가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한다.) 위랑가 족장이 부하를 보낼 때 마다 짜마데비는 다 큰 아이들에 게 젖을 먹이며 눈속임(이유기가 끝나지 않음)을 한것이다. 8년이 지나서야 속임수였다는 것을 알게 된 위랑가 족장은 코끼 리부대를 이끌고 하리푼차이 성을 공격하였고 성이 몰락하기 직전 짜마데비의 어린 쌍둥이 두 아들이 보랏빛의 집채 만 한 몸통 에 상아는 초록색을 띠는 코끼리를 타고 성안으로 들어 왔고 이 렇게 특이한 색의 코끼리를 본 다른 와족의 코끼리들이 놀라서 성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다. 그때 코끼리들이 서로 먼저 달아나려 하리푼차이 성의 북쪽 성문을 상아로 긁어댔다 하여 지 금도 람푼의 북쪽 성문의 이름이 ‘쁘라뚜 창시’(코끼리가 긁은 문)이다. 이렇게 일단 후퇴한 와족의 위랑가 족장은 부족을 다시 정비하고 짜마데비 왕비에게 최후통첩을 내린다. “이번 청혼에도 응하지 않으면 성안의 모든 사람들을 몰살 시키 겠다...”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는 왕비는 청혼에 응하게 된다. 하지만 다시 지혜를 모으니 지금 까지 태국 땅에서 가장 아름답 고 지혜로운 여인들을 대변하는 곳이 람푼의 여자들이라는 전례 가 된 것이다. 여왕의 지혜로운 청혼의 답장은 이렇다. “당신의 청혼에 진심으로 응하겠다. 하지만 나는 한 왕국의 왕비 이다. 왕비가 만약 평범한 사내와 결혼을 한다면 어느 국민이 나 를 왕비로 따르겠소? 해서 당신이 얼마나 용맹하고 힘이 쎈 사내 인지를 우리 국민에게 보여 주시오. 그 증표로 당신이 사는 도이 깜에서 이곳 람푼 성까지 창을 던져서 그 창이 성내에 도달하면 내가 기꺼이 당신의 청혼에 응하겠소. 기회는 세 번이요...” (참고 로 현재 지도에서 도이깜부터 람푼성까지의 거리는 30km 임^^) 왕비의 청혼 답신에 기꺼이 응한 위랑가 족장이 창던지기 1차 시 도를 한다.(기록에는 약 25km까지 창이 날라 갔다하고 창이 떨어져 분화구가 된 그 자리가 지금도 람푼의 유적지로 남아있다. 분화구^^) 1차 시도에 창이 근거리까지 도달한 것에 놀란 왕비는 잠시 휴전을 선언하고 다시 지혜를 모은다. 그리고 어차피 괴물(식인종)에 게 시집을 가야 한다면 수모라도 주고 가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불교 문화권의 남자에 있어 최대의 수모는 여자의 아래 속옷을 남자의 머리에 던지는 일) 그래서 왕비는 자신의 속옷으로 모자를 만들고 그것이 속옷임을 감추기 위하여 금과 은으로 장신구 를 만들어 모자에 단다.(방울달린 이 모자가 고산부족 아카족 모 자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오매불망 8년의 세월을 두고 기다리던 여인(왕비)으로부터 받은 멋진 선물을 위랑가 족장은 감동의 마음으로 머리에 쓰지만 그 모자를 쓰는 순간 온 몸에 힘이 빠지며 위랑가의 초인적인 힘은 사라졌다. 창던지기 2차 시도는 불과 5km 정도에 그쳤고 분통한 위랑가 족 장은 자신의 옷을 찢으며 창을 다시 하늘 위로 던지고 내려오는 창에 자신의 몸을 던져 가슴이 찔려 죽는다. 죽으면서도 자신의 머리를 왕비가 있는 남쪽으로 향해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식 인 족장 위랑가와 냄새 왕비 짜마데비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있는 곳이 바로 치앙마이 이다. (누가 감히 치앙마이는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심심한 곳이라 하는가? 미녀와 야수를 능가하는 러브 스토리가 있는 곳... 바로 치앙마이 이다.) 란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시작을 한다. 비록 버마족과의 왕 권 패권에 밀려 태국 땅에 들어 온 몬족(하리푼차이)이지만 원래 몬족은 전쟁을 치루면 적군이 한명이 남지 않도록 몰살을 시키는 부족으로 유명하다. 이에 짜마데비는 와족 몰살 명령을 내리고 방콕에 있는 부왕에게 까지 원군 요청을 한다. 족장을 잃은 식인 부족 와족은 근거지(도이깜)를 버리고 도망을 하는데... 그 와족이 달아난 곳이 바로 치앙샌(Chiang Saen 지금의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이다. 그리고 와족을 쫒아 치앙샌에 도착한 하리푼차이의 몬 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당시 치앙샌에는 중국 최남단 운남성에서 내려온 것으로 추측이 되는 민족이 있었으니 태국의 타이(Thai)족과 구별되는 따이(Tai) 족이다. 언양국(녹양이라고도 함)으로 알려진 중국계 민족이다. 그리하여 몬족과 와족의 전투는 다시 몬족과 언양국의 전투상황 으로 전개 되었고 그 사이에 와족은 산속으로 숨어든다.(후에 마 약 왕 쿤사를 돕는 최대의 무리가 된다.) 이렇게 몬족(하리푼차 이)과 언양국은 치앙샌에서 500년이 넘는 세월을 대치를 했고 세 월이 지나 언양국의 25대 왕이 세상에 등장을 하니 그가 바로 란 나 왕국을 건설한 맹라이(Mengrai 1238~1317)왕이다. 하리푼차이의 몬족으로 인하여 오랜 세월동안 치앙샌을 벗어나지 못했던 언양국의 맹라이는 왕자의 신분으로 부왕의 명령을 받아 새로운 땅을 찾아 남하 정책을 편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치앙라이(Chiang Rai)를 건설하고 다시 남하정책을 펴서 하리푼 차이 왕국이 있는 람푼을 점령한다. 661년 건국된 버마의 몬족이 세운 하리푼차이 왕국은 1281년 맹 라이 왕에 의하여 약 600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역사 속에 사라진 다. 하리푼차이 왕국을 정복한 맹라이왕은 지금의 고대도시(위앙 꿈감 Wiang Kum Kam)로 알려진 곳에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잦은 홍수로 인하여 도시는 물에 잠기고 1296년 지금의 치앙마이(Chiang Mai 신도시)땅에 란나 왕국을 건설한다.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치앙마이 란나 왕국은 이후 1500년대 중 반부터 약 200년간 버마의 지배를 받았고 다시 태국(톤부리와 짜 끄리왕조)에 조공을 받치는 나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30년대 에 완전히 태국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치앙마이(란나)의 사람들은 그 조상은 중국계(따이족)이 며 200년간의 버마의 통치 아래서 버마인화 되었고 다시 태국인 의 성향을 지니게 된 복합적인 민족이라 할 수 있다. 분명한 것 은 방콕을 중심으로 하는 태국인과는 완전히 다른 민족이다. 지금은 태국 제2의 도시로 불리는 치앙마이는 분명 태국이 아닌 또 다른 나라...700년 찬란한 역사를 가진 란나 왕국의 옛 수도이 며 우리는 지금 그 멋진 치앙마이를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따이(Tai)족과 타이(Thai)족-영문 자료를 검색하다보면 가끔 Tai와 Thai가 혼용해서 나오는데 그것은 잘못 표기가 된 것이 아니고 태국 (타이랜드)민족을 타이(Thai)족이라 부르며 따이(Tai)족은 중국의 운 남성 부근에서 내려온 란나의 선조들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칭하는 것 이다. 즉 현재 치앙마이사람들의 민족은 태국의 타이족이 아닌 따이 족으로 다른 민족이다.
★ 치앙마이주 인구 : 1,729,353명(2021년 7월기준)
★ 치앙마이시 인구 : 약 18만
★ 년 관광객수 : 500만명 (300만-타이, 200만-외국인)
★ 치앙마이 기온 : 3~4월 (고온), 5~10월 (우기), 11~2월(저온)
★ 치앙마이는 태국에서 가장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며 은세공, 칠기, 견직물,
티크(나무)조각, 우산, 도기등의 가내수공업, 야시장등이 발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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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앙마이 위치 (방콕에서 약 750Km 떨어진 북쪽에 있음) |
마이투어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