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를 대표하는 여인- 다라 라사미(Dara Rasami)
다라 라사미(Dara Rasami : 26 Aug 1873~ 9 Dec 1933)는 란나왕국의 마지막왕(사실은 인타논왕이 란나의 마지막왕은 아니다. 버마가 물러나고 란나가 태국의 통치를 받던 기간 12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 중 7번째 왕이지만 인타논왕 이후에는 사실은 이름뿐인 왕들 이었기에 인타논 왕을 사실상의 마지막왕이라 부른다.)인 King Inthawichayanon(인타논 산-인타논 국립공원에 자신의 이름을 하사한 왕)의 딸이다.
란나어와 타이어 그리고 영어에 능통하였고 승마를 좋아했다. 후에 시암(태국)왕국의 라마5세(Rama V)인 쭐라롱콘왕의 92명의 아내 중 한명이 되어 쭐라롱콘왕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방콕에서 태국의 진정한 왕비로 생활을 하였으며 말년은 다시 치앙마이에서 생을 마감 하였다. 쭐라롱콘왕과의 슬하에 공주가 한명 있었으나 생후 2년8개월 만에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아픔으로 마음에 힘든 생활을 한 왕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남긴 사진들이 모두 표정이 어두운 이유라고 한다. 딸의 유해는 둘로 나누어 반은 치앙마이의 수언 독 사원(Wat Suan Dok)에(사원내의 흰 탑들..) 그리고 나머지 반은 방콕의 Wat Ratchabophit 왕실 무덤에 안치되어 있다.
쭐라롱콘과의 혼인으로 왕비가 되어 방콕의 왕궁에 처음 들어갔을 때 치앙마이(당시는 란나라고 하던 태국과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다라 라사미)을 다른 왕비들은 '라오스 여자(Lao Ladies촌스러운 시골 여자를 의미)' 또는 '생선비린내 나는 여인(생선 젓갈은 란나와 라오스근방의 음식- 역시 비하하는 말)'이라 놀려 댔다. 그러나 그에 굴하지 않고 다라 라사미왕비는 란나의 전통의상과 긴 머리(란나 여인의 스타일... 당시 방콕은 서양의 신문물의 영향으로 여인들이 머리를 짧게 컷트 했었다)를 끝까지 고수했으며 나중에는 92명의 왕비 중 최고의 왕비(넘버 1)자리에 까지 오른 치앙마이(란나)를 대변하는 강인한 여성의 상징인 인물이며 태국의 근대 역사 속에서도 강인한 여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시암(태국)의 왕과 결혼을 하며 역사에서 그 이름이 사라진 란나 왕국. 그러나 그 특유의 자존심과 강인성으로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두 나라가 합쳐진 것으로 인식을 하게 만든 다라 라사미왕비는 치앙마이(란나)의 자존심을 지킨 그리고 오늘날의 치앙 마이가 있게 한 주인공이며 장본인이다.
촌스럽지만 자신의 전통을 끝까지 지킨 사람... 다라 라사미!!!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촌스러운 유산을 태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로 만든 치앙마이 사람들... 여행하며 배워야할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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