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자마이투어

등록일2016-10-12

조회수37,019

제목

a-1. 도이 수텝 사원

a-1. 도이 수텝 사원 (반일 투어 : 오전, 오후 하루 두번 운항)

( 예약하기 : http://www.maitour.co.kr/ab-goods-31-1002 )


누군가가 이야기 한다. 치앙마이에 와서 도이 수텝 사원을 올라보지 않고는 치앙마이를 여행했다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도이 수텝 사원은 치앙마이를 대표하는 사원이며 란나(Lanna Kingdom)의 역사를 가슴에 품은 채 지금도 치앙마이 아니 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사원이다.


''은 사원, '도이'는 산, '수텝'은 신선 또는 은둔자의 뜻이며 '프라탓'은 왕실에서 지정한, 즉 왕실이 관리하는 사원의 이름 앞에 붙이는 말로 태국 사원을 여행하다가 이 '프라탓'이란 이름이붙은 사원은 무엇인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면 된다.(대부분부처님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


정리하면 왓 프라탓 도이 수텝(Wat Phrathat Doi Suthep)은 왕실이 지정한 신선이 노니는 수텝 산 위에 있는 사원 이라는 뜻이며 도이 수텝 사원의 정식 명칭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도이 수텝 사원을 유명하게 만들었나? 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볼까 한다.


도이수텝, 도이푸이, 몽빌리지, 몽빌리지 박물관, 몽족마을, 몽족

 


이 사원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어깨 뼈)가 모셔져 있으며 그 사리가 이곳까지 모셔진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란나왕조 가 세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 지금의 태국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이미 세워진 수코타이

(태국의 최초 국가)에 수마나(Sumana Thera)라는 왕실 고승이 있었다.


그 수마나 스님이 특이한 꿈을 몇 회 반복해서 꾸게 되는데... 바위 안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꿈 이었다. 이 꿈을 기이하게 여긴 수마나 스님은 꿈속의 흰 바위를 찾기 시작 했고 빵(Pang Cha)라고 하는 곳에서 실제로 그 흰 바위를 발견하고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스님은 이 사실을 당시 수코타이 왕인 담마(Dharmmaraja) 왕에게 고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실 사원을 건립 할 것을 제안 한다. 그러나 담마라자왕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사원을 건립 하는 것 또한 허락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가 이웃 국가인 란나왕조에 까지 소문이 났고 란나왕국의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하여 구심점이 되게할 사건을 찾던 란나왕국의 누나온(King Nu Naone)왕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누나온왕은 서로 우호관계에 있던 수코타이의 담마라자왕에게 그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달라고 요청을 하고 1368년에 담마라자왕은 그 요청을 수락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란나로 오게 되었고 누나온 왕은 사리를 보관할 사원을 새로 건축하게 된다. 사원이 새로 건축되는 동안 진신사리를 직접 가져온 수마나 스님은 사원이 건축되는 약 2년 동안 지금의 람푼지역에 거주를 하였고 1371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새로 건립된 사원이 바로 왓 수언 독(Wat Suan Dok)...수언 독 사원이다.



옷수언독

 

수언 독 사원이 완공이 되고 부처님의 사리는 람푼으로 부터 수마나스님에 의하여 운반이 된다. 그러나 수마나스님이 수언 독사원에 도착해서 부처님의 사리가 들어 있는 발우(스님들의 밥그)를 내리는 순간 부처님의 사리가 두 쪽이 난다.


신사리 *부처님의 열반이후 불교의 보급에 앞장 선 인도의 아소카(기원전 약250년경?)왕은 부처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8등분하여 인도 전역에 걸쳐 8곳에 사리를 보관하였다.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하여 돌로 탑을 쌓았던 것이 지금의 불탑의 효시가 되었다. 이후 인도의 내란으로 불교가 위협을 받게 되자 아소카 왕은 8군데 로 나누었던 부처님의 사리를 다시 모으고 그것을 다시 8 4천여 조각으로 나누어스리랑카를 통하여 아시아 전역으로 사리와 함께 불교를 전파 시킨. 그것의 우리나라에 까지 불교가 들어온 계기가 되었으며 해인사의 팔만 대장경의 8만의 숫자의 의미도 되기도 한다.


도이수텝, 도이푸이, 몽빌리지, 몽빌리지 박물관, 몽족마을, 몽족

 


이를 불경하게 생각하지 않고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한 왕은 두조각 중 작은 하나를 현재의 수언 독 사원에 모시고 탑(쩨디)을 웠으며 다른 한 조각을 어디에 모실까 하고 대신들과 고민을 게 된다.


이후로 오랜 기간 다른 한 조각인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어디에 모실지 결론이 나지 않았고 왕의 제안에 의하여 당시 왕이 타고다니던 흰 코끼리의 등에 올려 코끼리가 가는 곳이 사리가 모셔질 부처님의 뜻이라 여기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사리는 코끼리의 등에 얹혀 졌고 왕을 포함한 대신들은 코끼리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코끼리가 가는 곳은 왕궁 쪽이 아닌 정글 숲 쪽 이었고 길도 없는 산을 코끼리는 3일 동안에 걸쳐 두 번을 쉬고 올라가서는 산 정상부근에 멈추어 섰고 그 자리에서 세 번을 크게 울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고 전한다.


그 산의 당시 이름은 도이 아오이 창(Doi Aoy Chang : Sugar Elephant Mountain)이며 현재의 도이 수텝이다. 그렇게 해서 코끼리가 죽은 자리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실 탑을 1383년에 세웠는데 최초 높이가 7미터의 탑으로 1371년에 수안독사원에 처음으로 사리를 보관한 이후로 12년이 지나서야 두 번째 사리를 모시게 되었다.


이후에 계속해서 사원은 증축이 되었고 1525년 무앙깨우(King Muang Kaew)왕에 의하여 탑의 높이가 현재의 높이인 16미터가 되었다. 1805 210년간의 버마의 통치가 끝나고 까윌라(Chao Kawila)왕에 의하여 보수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1934년 크루바 스리위차이(Phra Khruba Sriwichai1878~1938) 스님에 의하여 지금의 치앙마이 동물원이 있는 산 아래에서 사원까지 약 12km에 달하는 도로가 정비 되었다.


◎ 크루바 스리위차이(Phra Khruba Sriwichai1878~1938)스님


도이수텝, 도이푸이, 몽빌리지, 몽빌리지 박물관, 몽족마을, 몽족

 



치앙마이 동물원에서 도이 수텝으로 오르다 보면 부처님이 아닌 커다란 황금 스님 좌 불상이 보인다. 항상 많은 태국 사람들이 그곳에서 불공을 드린다. 치앙마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님이기 때문이다도이 수텝 사원입구에 있는 큰 스님의 좌 불상 그리고 시내의 왓 프라싱(프라싱 사)에 들어서면 보리수 잎 모양의 긴 부채를 들고 계신 스님상이 모두 크루바 스님이다. 사실 치앙마이의 거의 모든 사원에 스님의불상이나 흔적이 있다.


버마가 치앙마이를 지배할 당시 란나의 모든 사원은 폐쇄가 되었. 버마인들에게 있어 그들(버마)의 불교는 인정이 되었고 란나의 불교는 불교로 인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펼친 문화 말살정책과 다를 바 없었다. 란나는 우리나라처럼 일제 36년이 아닌 자그마치 200년이다. 모든 사원은 흉가로 변하기 시작했고 흔적마저 사라져 버렸다.


버마가 떠나고 치앙마이 란나의 사람들은 도이 수텝 사원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약 80년 전 태국(시암)이 란나를 합병하며 사원 살리기를 시작했고 그때 크루바 스님이 그 역할을 하였다. 숲속에 숨겨졌던 도이 수텝 사원을 찾았고 그 곳까지 가는 길을 닦기 시작했. 모든 란나의 국민들이 그 일에 참석을 하였고 모두의 땀방울이 모여서 되 찾아낸 사원이기에 치앙마이 최고의 사원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 일을 주도한 스님이 크루바 스님이고 치앙마이 거의 모든 사원을 고증해서 재 보수 하신 분이다.


♠ 가는 방법

마이투투어의 투어상품중 도이수텝 상품

http://www.maitour.co.kr/ab-goods-31-1002)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0

0

첨부파일 다운로드: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미투데이 공유
  • 요즘 공유
  • 인쇄하기